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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14 어머니의 힘 - 김인자님
어머니의 힘 - 김인자님



가을의 끝에서 초겨울로 접어들 때쯤이면 집집마다 김장을 하게 된다.. 지난해는 유난히 배추와 무값이 비싼데다가 속이 차지 않아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서 김치를 덜 먹는다고 해도 때가 되면 해야 할 것이 김장이다..
 

해마다 내 김장 걱정까지 해주시는 친정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집이 넓으니 그 곳에 와서 김장을 해가라는 것이다.. 여든넷의 연세에도 건강하시어 일일이 딸네 집에 전화하시고, 이것저것 챙겨 주실 때만큼은 어머니의 힘을 과시하신다.. 그런 어머니 마음을 딸들은 헤아릴 길이 없다.. 어머니는 해마다 김장을 직접 해주시거나 배추로도 주셨는데, 직접 해주신 것도 꽤 여러 해나 된다..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친정에 가서 김장을 해오는 일이 복잡하고 부산스러운 생각을 하면 올케 언니에게 미안하지만, 나 살아서 해주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이것도 효도일 수 있지 않느냐는 언니의 말에 집이 넓은 친정에 가서 김장을 해오기로 했다.. 몇 해 전 언니네 가 경기도 오남리에 조그만 땅을 사서 함께 농사를 지었다.. 고추와 고구마도 심고, 무 배추 씨앗도 넣어
정성스럽게 키웠더니 잘도 자랐다..
 

제때에 김매주고 솎아주고, 속이 차도록 배추를 묶어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 배추를 뽑고 다듬어 언니네 집으로 실어와 김장을 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동차로 3,40분은 가야하는 그 곳에 일요일마다 가서 야채들을 보살펴주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 언니도 지난해부터는 농사짓는 일을 그만두자고 했다..
 

그것을 알고 계신 어머니는 딸들 생각에 배추를 많이 심으셨던 게다.. 해마다 어머니는 손수 농사를 지어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는 기쁨으로 사시는 것 같다.. 배추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야채나 잡곡을 주실 때마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가슴속을 파고든다.. 그 중에서도 태양에 말린 고춧가루를 주실 땐 가슴이 뭉클해진다.. 언니네 밭에다 고추를 심고 가꾸어 고추를 따보니 허리가 몹시 아팠다.. 한 바가지씩 열린 고추가 바람에 쓰러질까봐 막대기로 받침대를 세워주고, 고추를 따도 말릴 공간이 적어 애쓰는 언니를 보아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가위로 자르고 햇볕에 말려 방앗간에 가 빻아서 주시는 노력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데 서슴없이 그 일을 잘도 하시다.. 그것도 노쇠한 몸을 이끌고 일하시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만 한데,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식들은 생각도 못할 나눔의 가르침을 몸으로 알려 주시는 어머니, 자식들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나 친척들에게 베푸시는 정성은 천성이신 것 같다.. 지난해도 배추 농사를 지어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고, 밭이 없는 사람에겐 밭도 떼어 주셨다고 한다.. 집 앞에 있는 그 밭은 동네에서 제일 땅이 좋다고 오래 전부터 소문이 나 있다.. 씨앗만 넣으면 무엇이든지 잘 된다는 밭을 갖고 계신 것도 농사가 잘되는 비결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그 결정체가 아닐까. 수 십년 동안 농사를 지은 노하우도 있겠지만,오로지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려는 마음이 무엇을 심던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농사를 지어내는 비결이 아닐까. 그래서 해마다 배추도 고소하고 무도 배속같이 물이 잘나고 맛이 있는 것이 아닐까.
 

서울에 사는 언니와 나, 안산에 사는 동생 둘까지 딸 넷이 다 모였다.. 배추를 절이고 파와 갓을 다듬고 무채를 썰었다.. 모두가 오빠와 어머니의 손길로 길러진 채소들이다.. 어머니네 것과 네 딸들, 시집간 손녀딸 것까지 여섯집 김장을 하려니 배추가 김치공장같이 쌓였다.. 어머니네 식구라야 손녀딸 둘도 시집가고, 오빠 내외와 세 식구가 사니 김장은 조금만 해도 될텐데, 더구나 올케언니가 직장을 다니니 딸들 것보다도 더 적게 해도 될 일이었다..
 

막상 가서 배추를 절여놓고 보니 어머니를 너무 힘들게 해드리 것 같아 송구스러웠다.. 김치 담그는 일이야 딸들이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떠나고 나면 뒷설거지도 많고, 오빠나 언니가 오기 전에 빈집에 홀로 계실 어머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픈데, 몇 해 전 병원에 계실 때의 그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고...
날렵한 몸놀림에 신바람까지 나신 것 같다..
 

친척 아주머니 세분이 오셔서 도와 주셨지만 배추가 많아서 무채도 많고, 양념을 넣어 버무리는 일도 힘들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 간이 싱겁네 짜네, 양념을 더 넣어라 젓갈을 더 넣어라 , 웃음과 이야기가 한데 어울리고 버무려져서 집안이 시끌 벅적 했다.. 배춧잎 사이사이에 맛있게 버무린 소를 어머니 정성과 함께 넣고 나니 날이 추워도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배추소로 쌈을 먹으니 고소한 맛에 이끌리어 자꾸만 먹게 된다.. 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 보아도....
힘이 나는지 어머닌 연실 환하게 웃으셨다..
 

아직 정정하신 여든넷의 어머니는 시집 간 딸들이 모여 김장하는 모습만 보아도 흐믓하신가보다.. 연실 입에다 막내가 사온 떡이나 사탕을 넣어주신다.. 올케언니에게 어머니 자신도 미안하실 텐데 해마다 딸들 김장하는 것도 어머니의 힘이고 울타리가 아닌가. 몇 해를 더 이런일로 연로하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까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온다..

Posted by 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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