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동화 - 임병식님'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3.22 유년의 동화 - 임병식님
유년의 동화 - 임병식님
 



어느 분 글에서 의식은 연대순으로 떠오르지 않는다고 쓴 걸 읽은 적이 있다.
기억 속에서 회상되는 것이란 늘 보낸 세월의 시차보다는 받은 감동이나
충격의 크기에 따라 떠오르게 됨을 말하는 것일 게다.


 어느 방송사에서 전생여행이란 프로를 내보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최근에서 부터 점점 옛날로 거슬러 가다가 종내는 전생까지 더듬는 프로인데
어느날 나는 그걸보면서 피최면자와 호흡을 함께하다가 문득 6,7세의 유년기에서
유독 가슴이 뜨겁게 치미는 걸 느꼈다.


 아마도 당시의 순수, 놀라움, 그때 본 비정이 강열하게 뇌리에  각인된 때문인지
모른다. 날씨 따사로운 봄날, 찔레를 꺾으러 나섰다. 찔레나무는 마을 뒷동산
언덕배기에 있었다. 여느 풀들은 아직 촉수를 내밀려고 채비도 하지 않은데
찔레나무는 바지런하여 어느새 새순을 반뼘이나되게 위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아랫쪽에서 몇 가지를 꺾었다.


 그러다가 위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위쪽에서 내려다보며 꺾는게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언덕을 오르려고 허리를 마악  굽힐 때였다. 아뿔사 이게 뭔가.  눈앞에 허연 금줄같이 늘어져 있는게 뱀이 아닌가.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 붙어 버렸다.  그러나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도망치지는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게 안심이 됐는지 모른다. 그런데 자세히보니 그것은 살아있는 뱀이 아니고 뱀이 벗어놓은 허물이었다. 얼마전에 벗은 듯 허물은 흐트러지지도 않고  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심할 사이도 없이 나는 바로 부근에서 정말 실물의 뱀과
조우하고 말았다. 놈은 길옆 뽕나무 등걸 속으로 서서이 들어가는 중이었는데
이미 몸이 절반쯤 땅속에 박힌 뒤여서 마치 썩은 새끼줄 모양이었다.
어쩌면 허물벗은 그 뱀일지도 몰랐다.


 나는 이번에도 자리를 뜨지않고 그 놈이 몸을 이끌고 굴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래야만 안심이 될것 같았다. 굴속으로 들어가는 뱀은 계속해서
쑥 들어가는게 아니고 멈칫멈칫하면서 들어갔다.


  아마도 숨을 고르느라 그런가 보았다. 뱀은 드디어 그렇게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 혐오감이 감도는 뭉뚝한 꼬리를 감춘 채. 대신 자리에는 뻐금하게 구멍 하나가
드러났다.
나는 정작 그 구멍이  마주친 뱀보다도 이상스레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날씨가 맑은 날은 내에 나가 놀았다. 보(堡)가 막아진 상류에는 물도 맑을뿐 아니라 가재도 참 많았다. 조그만 돌만 뒤집어도 그 속에 숨어있던 가재들이 놀라 황급히 뒷걸음을 치면서 집게발을 높이들어 공격태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잡으려들면 모를까 윗쪽으로 손을 뻗혀 목부위를 잡고 끌어내는데야 그 무서운 집게발도 허세일뿐 무용지물이었다.이렇게 가재를 잡으며 놀다가 그것도 심드렁해지면
모래샘을 파보기도 하고 모래성을 쌓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은 좀 이른 시각이었는지 갈대잎에 은구슬 같은 이슬방울이
총총히 맺혀있는걸 보게 되었다. 그 이슬방울들은 때마침 떠오른 햇살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이처럼 아름답게 빛나는게 또 있을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이슬방울들은 그냥 매달려있는게
아니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갈잎도 미세하게나마 흔들리며 변화를 보였다.
이슬이 이파리에 머무는
시간이 몇초나 될까. 눈한번 깜작하는 사이보다는 좀 길지만 1분은 채
머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초로인생(草露人生), 누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지금도
그 기억 때문에 어김없이 그때 본 이슬방울의 회억에 잠긴다.


 햇살이 각도를 새워 비출라치면 이번에는 물그림자들이 볼만하였다.
물가의 버들개지들 사이로 투시된 햇살은 착시현상을 일으켜 해파리 같기도 하고
새끼고기들 같기도 한 그림을 물 속에 새겨놓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림자는
바람이라도 살랑일라치면, 물 속에서 춤을 추며 볼만한 전경을 연출하였다.


 어떤 날은 새털구름까지 내려앉아 그 속에 어리고 높은 하늘은 그 높이만큼이나
수심으로 잠기어 어찔어찔 현기증을 일으켰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못하는 기억
6.25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도는 내 나이 일곱 살이었다. 이른 봄에 큰댁이 통채 불에 탄 불상사가 발생했다. 반란폭도들이 질은 것이었다.


 당시 이성잃은 지방폭도들의 만행이 극심했는데, 가담자들은 모두가 소작농 출신 아니면 일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그렇게 날뛰고 다녔다고 나중에 들었다.
큰댁은 소문난 큰 부자는 아니었으나 좀 잘사는 편이여서 표적이 된성 싶다.
당시 인동에 밥술께나 먹는 집치고 불태워지지 않는 집이 드물었다.


  그런데 대부분 집들은 같은 마을 폭도들에 의해 불이 났는데, 큰댁만은 그렇지 않고 다른 마을 사람들이 불을 내었다. 그것이 한점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아무튼 불이 났다기에 나도 선잠을 깨어 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한밤중, 마을 한가운데서 하늘을 찌를 듯한 불길이 치솟고 있는데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불이야, 불이야" 외침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그런 한편에서는 "이럴 어쩌나" 하는 소리와 함께 "나쁜 자식들" 울화를 터뜨리는 소리도 들려왔다.곳곳에서 "물물물"
외치는 소리가 왁자하였다. 들샘뿐 아니라 도랑에서는 양동이나 물동이에
물을 퍼담아 나르기가 이어지고 골목 곳곳에는 급히 만든 횃불도
올려져 길을 밝혔다.


 그런데도 불길을 잡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뒤늦게 뛰어든 불끄기는 별무 성과가
없었다. 폭도들이 불을 지른 후 한참 번질 때까지 접근을 막는 바람에 때를
놓쳐버려 사람들이 퍼붓는 물은 겨우 번지는 불이나 막는 정도였다.  



"어떤 놈도 불을 끄면, 가만두지 않겠다"

 이말 한마디에 범접을 못하고 만 것이다. 살기 등등한 기세에 그저 숨죽이며
속종으로' 애라 천벌을 받을 놈들' 혀나 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철부지도 보통 철부지가 아니었다. 사촌형과 둘이서 불탄 집터에 나가 호미로
엽전캐기를 하며 놀았는데, 그때는 그 재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었다.


다만, 불탄자리에서 백부님과 아버지가 망연히 서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있는 것이 무서워 보여 금방 흥미를 잃고 말았을 뿐이다.
그때가 어언 50여년 전이다.
연상은 질겨서 그때 겪은 일들 중 눈부신 이슬방울의 관찰은 내 문학의 자양분이
되었고, 그때 본 뱀굴은 섬뜩한 기억으로 남아 지금도 무슨 굴을 보면
모골이송연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그때 본 폭도들의 기억은 끈질긴 업이 되어 장소가 백리도 더 떨어진
여수에 까지도 끈을 놓지 못하게 하면서 몹쓸짓을 일삼던 그들의 내력을 캐는
일에 매달리게 하고 있다.
Posted by 누려라
,